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 자크 데살린 (문단 편집) === 혁명 지도자로 === 1791년 생도맹그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나다 데살린은 농장을 탈출했으며 반란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에게 동조했다. 읽고 쓸 줄 몰랐어도 빠르게 공부해서 루베르튀르의 보좌까지 상승했으며 전투에서도 사나움으로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793년 [[프랑스 제1공화국]]은 프랑스 전체의 식민지들의 노예제 종말을 선언하였고, 이후 루베르튀르와 데살린은 [[스페인]]과 [[영국]]에 대항하는 데 프랑스에 충성을 바쳤다. 이후 유럽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인해 일시적으로 빗나가면서 노예 반란은 내란으로 변하자 루베르튀르와 데살린은 섬의 통치를 위해경쟁자와 노예 주인들 같은 자들을 부수었다. 1801년까지 루베르튀르는 아이티의 총독으로 지냈으며, 데살린은 부사령관이었다. 와중에 [[생도맹그]]에서 많은 백인과 [[물라토]]들은 노예제를 부활시키라며 프랑스에 압력을 가하였고, 나폴레옹은 섬에 프랑스의 지배를 복원시킬 목적으로 군대를 보냈다. 루베르튀르와 데살린은 크레트아피에로 전투에서 점령군을 격퇴하였으나 후에 데살린은 루베르튀르의 리더십과 환멸을 느꼈고 잠시 프랑스 편을 들어 1802년 루베르튀르를 생포, 체포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노예제를 회복시키려는 의도했던 것이 명확해질 때 데살린은 다시 편을 바꾸어 프랑스군에 대항하는 반란군들을 지휘하였다. 데살린의 흑인과 물라토들의 연합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프랑스군]]은 항복하고 섬을 떠났다. 이로써 1804년 아이티는 세계에서 '''첫 [[흑인]] [[근대]] 국가'''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